영남에서 동학의 움직임이 컸던 곳은 경남 진주·하동, 경북 상주·예천·김산 (김천) 등이었다. 의성은 경북 중부지역으로, 상주·예천과 지리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에 이들 지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의성에서도 미약하지만 동학농민군의 봉기가 있었고 그에 대응한 세력이 나타났다.
경북 동학농민군1)과 반동학군2)에 관한 연구는 서북지역에 치우쳐 있다.3)
반면 경북 중부지역인 의성의 동학농민군과 그 대응세력에 대한 연구는 소개되 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4) 이 글은 의성 동학농민군과 그 대응세력을 연구하여 경북 중부지역에서도 그 움직임이 있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 주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첫 번째 자료는 楠軒遺集이다.5) 단권이지만 卷之一과 二로 나뉘어져 있다. 그 가운데 반동학군에 관한 내용은 卷之二에 많다. 여기에는 「甲午東亂倡義記」·「同苦錄」·「慕義契序」·「遺事」·「遺 事後敍」·「家狀」·「事蹟」·「行狀」 등에서 반동학군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으 며 여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명단도 있다. 그래서 의성 동학농민군과 반동학군 연구에서 빠지지 않고 사용되어왔으며 이 글에서도 인용한다.
두 번째 자료는 「李章繪 隆熙四年記錄」이다.6) 이번에 새로 찾아낸 이 문서는 1894년(갑오년) 8월 20일에서 25일까지 반동학군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어, 의성 반동학군 연구에 아주 유용하다. 또한 동학농민군과 반동학군이 벌인 전투장소를 기록하고 있어 동학농민군의 근거지를 역추적하기에 유용하다.
이 글은 의성 향촌지배층의 동학농민군 진압을 주제로 삼는다. 이를 위해 먼저, 1894년 의성 동학농민군의 의성관아 공격에 대해 살펴본다. 다음으로, 기본 자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