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아주(鵝洲). 자는 계수(季綏)·순보(順甫). 호는 회당(悔堂). 퇴재(退齋) 신우(申祐)의 6세손이다. 참봉(參奉)을 지낸 신수(申壽)의다섯 아들 중 셋째로 태어났다. 형은 신석록(申錫祿)과 신택록(申宅祿)이며, 동생은 신도수(申道洙)와신헌록(申憲祿)이다.
[활동 사항]
신원록(申元祿)[1516~1576]은 효성과 학문이 모두 뛰어났다. 11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가 병이 들어 인근에서 약을 구할 수가 없어 집에서 수백 리가 떨어진 팔공산까지 직접가서 약을 구해 왔다. 그러한 정성으로 형인 신원복(申元福)과 함께 8년 동안 아버지를 간호하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홀로 된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연친곡(宴親曲)」 8규(閨)를 지어 불렀다. 어머니의 상을 당해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세 번 성묘를 하였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에게 먼저 나아가 학문을 닦다가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하자 그곳으로 나아가 배움을 청하였다. 그리고 스승 주세붕이 세상을 떠나자 심상(心喪) 삼년을 지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풍기 군수로 재임할 때에는 백운동 서원에 머물며 구봉령(具鳳齡), 조목(趙穆), 김팔원(金八元) 등과 강론하며 교유하였다.또한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을 종유하며 학문에 매진하기도 하였다.
1556년(명종 11)에는 서원을 세워 의성(義城)이 관향인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을 배향하는데 앞장섰으며, 이 일로 “장천(長川)”이라는 사액을 받게 되었다.그 밖에 향리를 위해 스승 퇴계에게서 향약을 필사해 와 실행하고, 난민을 구제하기 위해진휼장(賑恤場)을 운영하고,고장의 발전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대소과(大小科) 출신인사들의 모임인 연계소(蓮桂所)를 설립하고, 문중 인사를 모아 사당에 참배하고 학문을 권장하는 모임인 월삭회(月朔會)를 조직하는 등 많은 일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세상을떠난 지 39년 뒤인 1615년(광해군 7) 그의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그가 살던 마을에 효자문이세워지고 통정대부(通政大夫) 호조 참의(戶曹 參議)에 추서되었다. 그리고장대 서원(藏待書院)에 배향되었다.
조선 전기의 효자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정려가 세워졌으며, 향리에서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진휼장과 유생을 수학시키기 위한 서당 등을 설립하였다. 본관은 아주(鵝洲)이고자는 계수(季綏)이며, 호는회당(悔堂)이다. 경상북도의성(義城) 출신이며, 조식(曺植)·주세붕(周世鵬)의 문인(門人)이다. 열한 살 때 아버지가 병이 들자 팔공산(八空山) 수백리 길...
장대서원 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 산34에 있다. 2013년 5월 28일 의성군의 문화유산 제26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장대서원은 장대리 장대에 있다. 서원은 현종 4년(1663)에 오봉(梧峯) 신지제(申之悌, 1562∼1624)가 후진양성을 위해 강당과 1672년에 그를 경모하기 위해경현사(景賢祠)가 창건되고 후에 장대서원으로 개칭되면서 본향출...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에 있는 사원. 신재 주세붕(愼齋周世鵬, 1495년 ~1554년)의 제자 회당신원록(悔堂申元祿, 1516~1576)이 그 형 신원복(申元福)과 인재 교육을 위해 시작한 사원으로 1568년(선조 1)에완성하였다. 조선 선조 때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오로리(五老里) 구리못 근처에 있던 것을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춘산면 빙계리(...
의성신원록불천위 사당 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 812-1에 있는 사당이다. 2017년 8월 1일 의성군의 문화유산 제39호로지정되었다. 개요 본 사당은 부모에 대한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속삼강행실(續三綱行實)』에 실려 그가 살던 마을에 효자문이 세워지고 통정대부, 호조 참의에 추서 및 장대서원에 배향된신원록을 매년 음력 2월 중정일...
경상남도 거제도의 아주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지금의경상남도 거제시 아주동 일대의 옛 지명인 아주(鵝洲)는 본래거로현(巨老縣)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에 아주현(鵝洲縣)으로 명칭이 바뀌어 거제군(巨濟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아주신씨는 이 아주현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아주신씨의시조는 고려 때 아주현의 권지호장(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