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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박(申光璞)
1693년, 울릉도에서 어로하던 조선인들이 일본인에게 연행되어 일본으로 들어
간 사건을 계기로 조선 조정에서 울릉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1694년 가을,
숙종은 삼척영장 장한상에게 울릉도 및 주변 도서를 조사해오는 임무를 부여하
였다. 조사 후 장한상은 조사 결과를 보고하는 이른바 장계(狀啟)를 비변사에 제
출했으나 그 장계와 별단(別單)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외후손 신광박이 필
사한 것으로 알려진 『울릉도 사적(蔚陵島事蹟)』이라는 제목의 문서만 전해지고
있다. 이 『울릉도 사적』에 현재의 독도를 가리키는 듯한 언급이 있어, 독도에 대
해 논할 때 이 문서가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같은 내용을 담은 이본이 장한상의 가장(家藏) 문헌으로 여럿 존재한
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1 즉 『교동 수사공 만제록(喬桐水使公輓祭錄)』과
『절도공 양세 실록(節度公兩世實錄)』에도 『울릉도 사적』이 실려 있다는 것이
다. 이본을 소개한 이원택 박사는 기존의 『울릉도 사적』이 포함되어 있는 『절도
공 양세 비명(節度公兩世碑銘)』 등 세 문헌을 비교하여 『교동 수사공 만제록』이
나머지 2종보다 가장 먼저 필사되었으며, 『절도공 양세 비명』이 『절도공 양세
실록』을 재편집·필사했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박세당의 『울릉도』가 남구만의
아들 남학명이 편찬한 『와유록(臥遊錄)』에도 실려 있다는 사실에 의거하여 양자
를 문헌학적으로 검토하였다. 나아가 그는 박세당의 글을 장한상의 글과 연관시
켜 박세당이 ‘우산도’라고 한 섬을 독도로 해석한 필자의 논지의 문제점을 지적
하였다. 즉 이원택 박사의 논지는 박세당의 『울릉도』에서 보이는 우산도 관련
내용이 『동국여지승람』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우산도’를 울릉도에서 맑
은 날 보이는 섬으로 해석한 필자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2 이에 이 글은
이원택 박사의 문헌학적 검토 및 필자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재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